DeepMind와 다빈치를 함께 꺼내며 AI와 예술의 경계를 왜 지우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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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의 중심에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있어요. 창의성과 과학을 서로 다른 방으로 나눠 보지 말자는 거예요. 그는 자기 삶과 경력을 늘 기술과 창의성의 교차점에서 살아왔다고 말해요. 겉으로 보면 과학은 논리, 예술은 감성처럼 갈라 보이지만, 그의 눈에는 큰 발견이 나오는 자리가 오히려 둘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이 연설은 단순히 AI를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왜 과학에도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설명하는 흐름으로 읽는 게 중요해요.
그가 이 생각을 설명할 때 꺼내는 대표 사례가 초기 비디오게임이에요. 게임의 목표는 원래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을 주는 창의적 목표였는데, 바로 그 목표가 3D 그래픽, AI, 하드웨어 발전까지 밀어 올렸다는 거예요. 이해를 위해 가상의 비유를 들어보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무대를 만들려다 보니 조명, 음향, 기계장치 기술까지 함께 발전하는 공연장을 떠올리면 돼요. 관객을 감동시키려는 창의적 요구가 기술자들에게 '지금 없는 도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식이죠. 그는 게임 산업이 당시 학계 밖에서도 AI 아이디어를 전진시켰고, 지금 AI에 쓰이는 GPU도 원래는 3D 그래픽을 위해 나왔다고 말해요. 여기서 핵심은 부산물이라는 개념이에요. 처음부터 'AI 하드웨어를 만들자'가 아니라 다른 큰 목표를 좇다가 예상 못 한 성과가 따라왔다는 거죠.
왜 그가 과학에서 창의성을 그렇게 강조하는지도 개인사와 연결돼요. 가족은 음악과 예술 쪽에 가까웠고, 본인의 정식 훈련은 체스, 컴퓨터, 과학처럼 논리적인 쪽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정작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은 창의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적이라고 말하죠.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창의성을 과학의 장식물로 보는 게 아니라 과학 자체를 밀어주는 동력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기술적으로 뛰어난 과학자는 많지만, 큰 돌파구는 직관적 도약에서 나온다고 주장해요. 다시 말해 지식을 많이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아직 완전히 증명되기 전의 가능성을 붙잡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그 바탕 위에서 그는 AI를 매우 큰 규모의 변화로 바라봐요. 전기, 전화, 인터넷, 모바일에 견줄 만하거나 그보다 더 클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산업혁명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될 수 있다고 전망해요. 다만 이건 이미 확인된 사실을 보고하는 게 아니라 그의 강한 기대와 예측이에요. 그래서 이 부분은 'AI가 반드시 정확히 그만큼의 영향을 낸다'가 아니라, 그 정도로 대비해야 할 만큼 큰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아요. 그는 산업혁명이 많은 혜택을 줬지만 동시에 환경 같은 문제를 낳았고, 그래서 새로운 제도와 접근이 필요했다고 덧붙여요. AI도 마찬가지로 기회만 볼 게 아니라, 부작용을 다룰 틀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예요.
그가 평생 AI를 해 온 이유도 여기서 구체화돼요. 특히 과학과 의학을 전진시키는 데 AI를 쓰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AlphaFold와 Isomorphic를 예로 들며 약물 발견 가속과 인간 건강 개선을 가장 중요한 적용처로 꼽아요. 이 부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그는 AI를 만능 자동기계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AI는 가능성과 경로를 열어 주는 기술일 뿐,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무엇이 좋은지까지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어요. 쉽게 말해 아주 강력한 지도는 줄 수 있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지도가 대신 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그는 기술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해요. 사회가 AI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무엇이 인간에게 이로운지, 다음 시대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는 예술, 인문학, 사회과학이 함께 다뤄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그는 아주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요.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지, AI로 인간의 창의성을 어떻게 강화할지, 어떻게 대체하지 않게 할지, 그리고 AI 시대에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와 '영혼 같은 것'을 어떻게 구분할지예요. 발췌만으로는 그가 말한 '싱귤래리티'나 'full AGI'의 정확한 정의는 나오지 않아요. 다만 그는 그것을 몇 년 안에 닥칠 수 있는 큰 전환점처럼 보고, 사회가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 문단의 핵심은 기술 예측 자체보다, 답을 정하는 권한이 기술자에게만 있지 않다는 주장에 있어요.
분위기가 너무 비관적으로만 흐르지는 않아요. 그는 인간의 창의력과 적응력을 꽤 강하게 믿고 있어요. 사람이 원래 그런 문명을 만들도록 진화한 존재가 아닌데도 비행기, 예술, 현대 문명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떠올리며, 이번 변화도 결국 다음 세대가 길을 찾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그 낙관은 '가만히 있어도 잘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토론을 어제부터라도 시작했어야 할 만큼 빠르게 다가오니 지금 당장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하죠. 즉, 그는 낙관과 경계심을 동시에 들고 있어요. 잘될 수는 있지만, 저절로 잘되지는 않는다는 태도예요.
마지막에 다빈치가 나오는 이유는, 그가 꿈꾸는 인간형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에요. 다빈치는 예술가이면서도 해부학적 그림과 공학적 도해를 남긴 인물로 언급돼요. 그는 다빈치가 예술과 과학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고 해석해요. '지금은 예술, 지금은 과학' 하고 칸막이를 세운 게 아니라 그냥 관찰하고 그리고 만들었다는 거죠. 여기서 그의 메시지가 다시 또렷해져요. AI 시대에 필요한 건 한쪽 능력을 버리고 다른 쪽으로 옮겨 타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을 한 몸처럼 다루는 태도라는 거예요. 다만 그는 AI가 그런 르네상스적 시대를 '도울 수도 있다'고 말할 뿐, 자동으로 그렇게 만들어 준다고 단정하지는 않아요.